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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 죽음, 전쟁, 사진, 그리고 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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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대상화한다.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은 위의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손택은 에세이 내내 사진이 피사체를 어떻게 대상화하는지, 사진가는 피사체를 어떻게 대상화하는지, 그것을 보는 관찰자는 피사체를 어떻게 대상화하는지, 그리고 무엇이 그러한 대상화에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히 손택이 주목하는 것은 '죽음'과 '고통'이다.

손택에 따르면 사진은 죽음과 분리될 수 없다. 그는 죽음의 주무대인 전쟁을 사진이 어떻게 다루는가에 대해 설명하느라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종군기자 로버트 카파의 <어느 인민전선파 병사의 죽음(Spanish Loyalist at the Instant of Death)>. 카파는 이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사진은 타인의 고통의 증거물이며, 요즘처럼 서로가 연결된 세상에서는 너무도 쉽게 전쟁과 고통을 세계화한다. 그리고 이렇게 세계화된 고통은 사람들의 연민을 유발한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진 연민은 오히려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사진의 관찰자와 사진의 피사체 사이에서 작동하는 권력을 신비화하거나 은폐하며, 그럼으로써 사람들이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게 만든다. 손택은 이에 대해 "마음을 뒤흔드는 이미지는 최초의 자극만을 제공할 뿐"이라고 말한다.

똑같은 반전 사진도, 전쟁에 대한 합리화에 저항하는 것으로 읽힐 수도 있고, 비애나 영웅주의를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읽힐 수도 있다.

사진가들의 예술에 대한 집념과 항의 정신은 잔혹한 일들에 대한 증거를 남기지만, 사진가는 피사체를 대상화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해석하기 때문에, 그 사진이 어떤 것이 되느냐, 무엇을 위해 그렇게 되느냐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다. 사진은 제목, 우연찮게 옆에 게재된 광고물, 그리고 심지어는 제목의 유무에 따라서도 그 의미를 달리 갖는다. 손택은 단순히 연민에서 끝나지 않는 우리의 적절한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사진을 통해 무언가를 인식한다는 것은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정보가 손실됨을 의미한다. 이러한 손실이 있음을 알면서도 우리는 사진이 수정되지 않았다는 무의식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데, 이 믿음이 사진을 위험하고도 효율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 믿음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사진에서 목격한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그럼으로써 사진의 최초 해석자가 그 뜻을 왜곡하기 쉽도록 만들어준다. 이러한 이해(또는 오해)의 구조는 손택의 설명에 의해 구체적으로 논증된다.

제1차 걸프전의 별명은 '비디오 게임 전쟁'이었다. 전쟁 당시 CNN의 전파를 타고 전쟁 장면이 게임처럼 생중계되었기 때문이다. 총탄에 맞아 죽거나 폭사하는 이라크 병사들의 모습이 미군의 헬맷캠에 의해 생생히 찍혔고, 적군을 죽이는 병사의 시점은 이후 다양한 게임에서 그대로 차용되었다. 손택이 통렬히 그러나 담담하게 지적한 바, 베트남 전쟁 이후로 우리는 안방에서 전투와 대학살 장면을 보게 되었다.

손택이 사망한 지 17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쉽고 기술적으로 편집된 영상들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유튜브에는 죽음과 살인, 전쟁, 그리고 범죄를 찍은 영상이 넘쳐나며, 사람들은 이 영상들이 사실인 것을 알면서도 아무런 부끄럼 없이 소비하고 즐긴다. 지금의 사람들은 사진을 영상보다 더 진지하고 조심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러니까, 사진은 영상보다 '권위'가 있다. 이러한 현실이 손택의 문제제기를 여전히 상당히 유효한 것으로 만들어 준다. 

 


2021년 서*대학교 '산문*******사유'
Response Essay to <Regarding the Pain of Others> of Susan Sontag (Ch. 2, 5, 6)

영문으로 작성한 글을 한국어로 번역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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