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뒷세이아』에서는 “이윽고 먹고 마시는 욕망이 충족되었을 때”라는 구절이 여러 번 나온다. 주로 저녁 만찬을 가진 후에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꼭 만찬 참석자들의 배가 불러야 본격적인 이야기나 전개가 시작되는 구조다. 하도 집착적으로 등장하는 구절이어서, 읽다가 문득 궁금해져 그리스 원전을 찾아보았다.
원문은 “και του φαγιού και του πιοτού την όρεξι αφού σβήσαν,”이다. 그리스어-한국어 번역은 아무래도 상실되는 의미가 많을 듯해서 구글 번역기에서 그리스어-영어 번역을 돌려본 바로는 '음식과 음료에 대한 식욕이 사라졌을 때' 정도의 뉘앙스인 것 같다. 해당 구절은 토씨 하나도 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오뒷세이아』에서 11번 등장한다.
이와 같은 표현은 『오뒷세이아』 24권에서 “Και αφού κείνοι την όρεξι του γλυκού σίτου εσβύσαν(천병희: 한편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음식을 동료들이 배불리 먹었을 때),” 등의 변형된 형태로 등장하기도 한다. 해당 구절은 그-영 번역으로는 '달콤한 곡식에 대한 식욕을 해소했을 때' 정도로 번역된다.
이런 식의, '음식을 배불리 먹은 다음에 본격적인 이야기나 상황이 시작되는 것을 묘사하는 구절'은, 『일리아스』에서도 등장한다. 『일리아스』 9권에서 아가멤논이 아킬레우스에게 사절단을 보내어 간청할 때 호메로스는 “Και πια σα χόρτασαν καλά γερό με φαγοπότι(천병희: 그리하여 먹고 마시는 욕망이 충족되었을 때 / 그-영 구글 번역: 음식과 음료로 충분히 만족하였을 때),”라고 말한다.
『오뒷세이아』와 『일리아스』에서 묘사된 바로 짐작건대 고대 그리스의 남성들은 고기와 곡식이 차려진 풍족한 식사를 마친 후에서야 본격적으로 이야기나 토론—『일리아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남자들이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회의'—을 시작했던 것 같다.
『오뒷세이아』 1권에서 텔레마코스는 멘테스의 모습을 한 아테나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환대하며 “우선 식사부터 하고 그대의 용건을 말하시오(124행)”라고 청한다.
4권에서 텔레마코스를 맞이한 메넬라오스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맛있게 드시오. 그대들이 저녁을 들고 나면
우리는 그대들이 어떤 사람인지 물어볼 것이오.
그대들 부모님들의 혈통은 그대들에게서 소멸되지 않았군요.
그대들은 제우스께서 양육하신 홀을 가진 왕들인 그런 분들의 혈통임이
분명하니 말이오. 천한 자가 그대들 같은 자식은 낳지 못하는 법이오.”
(천병희 역, 『오뒷세이아』 60-64행)
메넬라오스는 텔레마코스와 페이시스트라토스가 고귀한 혈통임을 알아챘다고까지 하면서도 정작 두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묻는 것은 두 사람이 저녁을 배불리 먹고 난 다음으로 미루겠다고 말한다. 운은 먹기 전에 떼어 놓고, 다 먹은 뒤에 이야기를 이어서 시작하는 이러한 모습은 밥을 먹으면서 대화를 하는 현대 한국인에게는 굉장히 생소하고 신기한 장면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그리스인들은 아침과 점심을 미식의 개념으로 가볍게 먹고, 해가 진 후에 먹는 저녁식사는 풍족하게 차려 먹었는데, 이것은 사교 활동의 개념이기도 했다고 한다. 한데 저녁식사가 사교의 장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에서 묘사된 저녁식사들에서 저녁을 배불리 먹은 후 중요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모습은 더더욱 기이해 보인다. 물론 고대 그리스의 연대적 범위가 넓으니 해당 자료가 『일리아스』나 『오뒷세이아』의 시대에 해당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고대 그리스의 사람들은 단순히 음식을 먹고 마실 때는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 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먹는 데에 집중하려는 참석자를 방해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고 여겼던 것일까? 또는 호메로스의 서사시—『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가 둘 다 호메로스의 것이 맞는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에서만 등장하는 서사시적인 연출일 뿐일까? 아니면 음식을 먹는 행위와 말을 하는 행위를 전부 존중하려는 것이었을까?
또한, 아무리 한 명이 쓴 작품이라 하더라도 한 구절이 패러프레이징도 없이 한 작품에 열 번 넘게 등장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있는 것 같다. 작품에서 먹고 마시는 욕망(όρεξι: appetite)을 없애는 것을 이렇게 중요하게 다뤘던 이유가 무엇일까? 배가 부른 후에야 좋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리스어 원전은 이곳에서 볼 수 있다.
≪위대한 유산≫ '비참한 심정'과 햄릿 사이 그 어딘가 (0) | 2021.03.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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