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유산>에서는 인생의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인물들이 핍의 고향 이웃들로 왕왕 등장한다. 고향에서 연극을 하겠다며 설치고 다녔던 밥맛 이웃 웝슬 씨는 런던으로 떠나 연극 배우로서의 삶을 새로이 시작하는데, 그 결과가 좋지 못해 이웃들로부터—그리고 디킨스로부터— 조롱을 당한다.
핍은 허버트와 함께 31장에서 웝슬 씨의 연극을 보러 간다. 웝슬 씨는 햄릿 왕자 역을 맡았지만 관객들로부터 심한 야유를 받는다. 연극이 끝나고 핍과 허버트가 차마 박수를 칠 수 없을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심한 동정심을 느낀 핍과 허버트는 웝슬 씨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급히 자리를 뜨려다 웝슬 씨의 스타일리스트에게 발각되고 웝슬 씨와 강제로 대면한다.
'월든가버 씨'라는 가명을 사용하고 있던 웝슬 씨는 잔뜩 뻐기며 이렇게 말한다. "만나게 되어 영광이오. 핍 군, 이렇게 오라고 한 것을 용서해 주기 바라네. 예전에 그대를 알고 지낸 행운이 있는 데다가 연극계는 언제나 귀족과 부유층에게 부탁하는 권리를 행세해 왔고 또 그 권리를 늘 인정받아 왔기에 그랬네." 심지어 공연을 '예배'라고 칭하기도 한다.
그가 처참한 연극을 마치고서도 이렇게 자신의 연기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는 관객들의 야유가 어떤 남자의 사보타주였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핍은 웝슬 씨의 그런 모습이 너무나 딱하게 여겨져 그를 저녁 식사에 초대한다. 웝슬 씨는 새벽 2시까지 자신의 성공에 대해 떠들어댔고, "연극을 부흥시키는 일로 시작했다가 연극을 붕괴시키는 것으로 삶을 끝낼 예정"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그가 사망하면 연극계는 완전히 몰락"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저녁식사를 마친 핍은 잠자리에 들면서 갑자기 이런 감정에 사로잡힌다.
Miserably I went to bed after all, and miserably thought of Estella, and miserably dreamed that my expectations were all cancelled, and that I had to give my hand in marriage to Herbert’s Clara, or play Hamlet to Miss Havisham’s Ghost, before twenty thousand people, without knowing twenty words of it.
마침내 나는 비참한 심정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비참한 심정으로 에스텔러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으며, 내 상속 가능성이 모두 취소되고, 내가 허버트의 클래러와 결혼식을 올리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고, 2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 앞에서 대사를 스무 마디도 알지 못한 채 미스 해비셤의 유령을 상대로 햄릿 연기를 해야 하는 비참한 꿈을 연달아 꾸었다.
<위대한 유산 2> 찰스 디킨스, 이인규 옮김. (2009)
이러한 급격한 심경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또한 클라라와 미스 해비셤의 유령이 등장하는 터무니없고 황당무계한 꿈의 내용은 핍이 유산을 잃을 것만 같은 공포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핍의 이런 비참한 심정이 웝슬과의 저녁식사를 하고 있을 때 또는 웝슬의 연극이 끝난 후가 아니라 웝슬과의 저녁 식사를 마친 이후에 닥쳐왔다는 것은 상당히 의아스럽다.
이 '비참한 심정(miserableness)'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이것은 고향 사람들에게 우월감을 느끼고 있던 자신의 모습에 대한 죄책감일까? 아니면 연극처럼 세상에 가짜 이미지를 보여주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부끄러움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핍 자신이 '고향 사람'처럼 비웃음을 당할 것이라는 불안감일까?
그리고 하필이면 저녁 식사를 마친 이후에 이 '비참한 심정'에 사로잡힌 이유는 무엇일까? 이 장은 내내 웝슬의 연극 내용을 묘사하고 있고 웝슬은 자신이 고향 사람들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핍은 웝슬이 처량한 처지에 있으면서도 뻐기는 모습을 목격한 후에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게 된 것일까?
또, 핍은 대체 왜 웝슬 씨가 맡았던 햄릿이 되어, 햄릿 왕이 아닌 미스 해비셤의 유령을 마주치는 꿈을 꾸었던 것일까? 웝슬 씨를 동정하던 핍이 비참한 심정을 맞은 후 꿈 속에서 웝슬 씨보다 더 처량한 상황에 처한 이유는 무엇인가?
찰스 디킨스는 웝슬 씨의 연극을 묘사하기 위해 장 하나를 할애했다. 물론 디킨스는 <위대한 유산>을 잡지에 연재하고 있었으므로 일반 소설을 분석할 때와 같은 시각을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소설의 후반부에는 아예 등장하지도 않는 웝슬이라는 인물을 이렇게 자세히 묘사한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아들 햄릿에게 클로디어스를 향한 자신의 복수를 사주하는 햄릿 왕의 유령이 에스텔러에게 남자들을 향한 자신의 복수를 사주하는 미스 해비셤으로 등장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프랑코 모레티는 교양소설(Bildungsroman)을 설명하면서 햄릿에 대해 "햄릿을 상징적인 첫 영웅으로 선택한 우리의 문화는 햄릿의 나이를 잊었거나, 그보다도, 이 덴마크 왕자의 나이를 바꾸어서 어린(젊은) 남자로 묘사했다"라고 말한 바 있다. 햄릿은 서른 살이고, 모레티에 따르면 서른 살은 "르네상스 기준으로 어리다(젊다)는 것과 거리가 먼"데도, 젊은 남성 주인공의 대표 격으로 서양에서 소비되어 왔다는 것이다. 젊은 영웅이지만 아무 것도 속 시원히 결정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하기만 한 햄릿의 상징성은 대사도 모른 채 그를 연기하는 꿈 속의 핍과 관련이 있을까?
디킨스는 죽었으니 그 답을 명확히 알 수는 없겠지만, 호기심을 가지고 의문점을 던져 볼 만한 지점이지 않을까.
≪오뒷세이아≫ '이윽고 먹고 마시는 욕망이 충족되었을 때' (0) | 2021.03.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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