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11
목차
가정주부의 가사노동은 서로 다른 다양한 업무들을 최대한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하기 위해 잘 조직화된 하나의 업무 시스템이다. 가정주부들은 대화를 함으로써 업무 효율을 높이는 노하우와 ‘생활의 지혜’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전문 지식을 공유하고,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그러나 인류 역사상 여성의 말하기, 특히 가정주부의 말하기는 ‘수다’라는 호명 아래 사소하고 중요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치부되어 왔다.
사회상을 반영하는 거울인 문학에서도 가정주부들의 대사는 사건에 영향을 준다기보다는 단순히 포근한 집 안의 정경을 꾸미는 등 불필요한 역할을 맡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여기, 가정주부의 말하기를 유의미하게 활용한 두 희곡이 있다. 수전 글라스펠의 <사소한 것들(Trifles)>과 유진 오닐의 <조식 전(Before Breakfast)>이다.
<조식 전>은 자신의 남편을 폭력적인 언어로 끊임없이 비난하는 가정주부의 일인극이고, <사소한 것들>은 두 명의 가정주부가 남성들이 깔보는 공간인 부엌에 남겨진 사소한 증거에서 실마리를 얻어 살인사건의 전모를 밝혀내는 이야기다. 두 희곡은 가정주부의 말하기의 중요성을 활용하는 방식과, 가정주부의 말하기를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는 사회적 시선을 녹여낸 방식에 있어 큰 차이를 보인다.
유진 오닐의 <조식 전>의 유일한 주인공 롤랜드 부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를 장악한다. 그는 남편 앨프레드 롤랜드에게 소리를 지르고, 남편을 조롱하고, 남편과 자신 사이에서 일어난 일을 주관적으로 서술하고, 남편을 의심하면서 극을 이끌어나간다. 반면 남편은 무대에 전혀 등장하지 않다가 종국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자신이 무대에 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조차 제거해버리게 된다.
그러나 이처럼 권력을 쥔 것처럼 보이는 주인공 롤랜드 부인과 무대에 등장하지도 않는 남편의 존재감은 극이 진행되면서 이상하게 반전된다. 롤랜드 부인이 무대를 장악하려 할수록 그의 존재감은 오히려 줄어든다. 롤랜드 부인의 대사는 전부 그의 남편에 대한 것이며 롤랜드 부인이 취하는 행동은 전부 그의 남편을 위한 집안일이기 때문이다. 롤랜드 부인은 남편의 옷매무새를 매만지고 수염에 대해 잔소리함으로써 무대에 등장하지 않은 남편의 외형을 알려준다. 롤랜드 부인의 대사를 통해 관객들은 남편이 마땅한 수입이 없는 예술가이고 바람을 피웠으며 그의 이름이 ‘앨프레드 롤랜드’라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
관객은 앨프레드에 대한 정보를 들으면서 롤랜드 부인이 아닌 앨프레드 롤랜드에게 자신의 관심을 쏟게 되고, 더 나아가 무대에 부재하는 그의 존재에 대한 갈증을 느끼기 시작한다. 한국외대의 박정만 교수는 “앨프레드의 부재성이 극대화될수록 관객을 향한 그의 호소력은 그만큼 커진다”라고 설명한다.
게다가 롤랜드 부인은 남편을 지속적으로 ‘앨프레드’라고 호명하지만, 롤랜드 부인은 유일한 주인공이기 때문에 무대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고, 또 여성이기 때문에 남편의 성을 따라 롤랜드 부인으로만 존재한다. 즉 롤랜드 부인이 극에서 가지고 있는 그 모든 속성은 남편 앨프레드 롤랜드를 위한 것이다. 롤랜드 부인은 극을 이끌어가지만 절대 진정한 주인공이 될 수 없으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남편을 화장실에서 발견한 뒤 소스라치게 놀라 무대를 뛰쳐나가면서 극은 결국 무대에 오른 적도 없는 앨프레드의 존재감으로 마무리된다.
이와 달리 수전 글라스펠의 <사소한 것들>에서 주인공 헤일 부인과 피터스 부인의 표면적인 존재감은 그리 크지 않다. 극이 시작할 때 주인공들은 무대의 가장자리인 ‘문 근처’에 함께 서 있다. 이들은 남성 인물이 무대 위에 등장할 때마다 그들에게 무대의 중심을 내주고 발언권을 잃는다. 그러나 극이 진행될수록 그들은 무대의 변두리에서 중심으로 서서히 진출하고, 그들의 존재감 역시 함께 자라난다. 그럼에도 극의 마지막에서 그들은 헨더슨의 부당한 조롱조의 질문에 공손하게 답변하며 다시 무대의 중심을 내준다. “저희는 그걸 ‘매듭을 짓는다’고 한답니다, 헨더슨 씨.”
<사소한 것들>에서 글라스펠은 남성 인물들이 무대를 비울 때마다 피터스 부인과 헤일 부인이 관객이 알아야 하는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게 함으로써 ‘이 극에서 주인공들뿐만이 유의미한 사실들을 밝혀낼 수 있다’라는 공식을 성립시킨다. 그렇기에 관객은 주인공들이 다시 무대를 장악하기를 기다리고, 주인공들의 대사를 주의 깊게 듣는다.
극이 진행될수록 주인공들은 라이트 부인과 관련된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반성함으로써 유대감을 형성하고, 단서를 포착하고 이에 대해 추리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피터스 부인과 헤일 부인의 유대감은 서서히 극의 핵이 된다. 주인공들은 나중에는 라이트 부인이 남편을 살인했다는 사실을 숨기는 불법적인 행위에 가담하기에 이른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들은 자신들의 ‘사소한 것들’에 대한 관심이 사건의 전모를 밝혀냈다는 사실을 남성들에게 말할 수 없다. 주인공들은 관객들에게 자신들의 중요도를 증명하는 데에는 성공하지만 그들이 사는 극 속 세상에서 그들은 여전히 사소한 것에 걱정할 줄이나 알지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는 멍청한 가정주부로 남게 된다.
가정주부의 말하기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조식 전>과 <사소한 것들>에서 여전히 반영되지만, 가정주부의 ‘수다’는 현실에서와 달리 중요하게 여겨진다.
오닐의 <조식 전>에서 롤랜드 부인은 윽박지르는 듯이 보이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남편이나 죽은 아이와 같은 가족 문제다. 이러한 현실적인 이중성은 그가 속물적이고 성질이 나쁜 언어폭력의 가해자인 동시에 가부장제 하에서 자신의 이름을 잃은 채 가정과 남편을 돌보고 무능한 남편 대신 생계까지 꾸려나가야 하는 피해자임을 암시한다. 오닐이 의도했든 아니든, <조식 전>의 이러한 연출법은 아무리 공격적이고 시끄러운 주부의 잔소리라도 실제로는 무의미하게 여겨진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글라스펠은 <사소한 것들>에서 그보다 더 현실적인 방식을 통해 ―여성의 대화에 대한 남성들의 반응을 묘사함으로써― 실제 사회의 모습을 반영한다. 피터스 부인이 라이트 부인의 얼어버린 과일 병을 언급하자 헤일은 “음, 여자들은 사소한 일로 걱정하는 데 익숙하지.”라고 말한다. 이렇듯 현실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여성을 무시하는 남성의 대사와 여성들이 진실에 접근한다는 사실을 대조시킴으로써 글라스펠은 ‘사소한 것들’에 대한 여성들의 ‘수다’가 의미 있을 수 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조식 전>에서 남편은 롤랜드 부인의 잔소리로 인해 자살하는 반면 관객들은 그 잔소리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반대로 <사소한 것들>에서는 남성들이 주인공 여성들의 말하기를 무시하는 반면 관객들은 이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 대조는 관객들 역시 여성혐오적이고 가부장적인 사회의 구성원들 중 하나라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 극에서 드러난 가정주부들의 존재감은 작가에 의해 철저히 연출이 되어야지만 극에서라도 경험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두 희곡에서 가정주부의 말하기가 가졌던 존재감은 극이 끝나는 즉시 증발해버리며, 따라서 관객이 목격한 ‘가정주부의 중요한 말하기’는 일시적인 경험에 그치는 것이다.
2020년 서*대학교 '영문학작문' 중간고사 대체과제
Response Paper to <Before Breakfast> of Eugene O'Neill and <Trifles> of Susan Glaspell
영문으로 작성한 글을 한국어로 번역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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