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정식 사랑(amour courtois)’이라는 말은 가스통 파리스가 크레티앵 드 트루아의 『죄수 마차를 탄 기사』에 관해 쓴 논문에서 처음 사용된 말이다. 그가 관찰한 궁정식 사랑의 전형적 특징은 네 가지다. 첫째, 부부 사이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혼외의 사랑을 그린다. 둘째, 귀부인이라는 상류층 여성은 남성 구애자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고 때로는 구애자를 막대하거나 경멸하기도 한다. 셋째, 구애자는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무엇이든 행하며, 여성의 부정적 피드백은 구애자의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수단에 불과하다. 넷째, 사랑에는 나름의 준칙이 있어 이것을 지켜야만 한다. 이들을 중세 문학 특유의 모순들과 연관짓는다면 중세 기사 로맨스의 본질을 알아낼 수 있다.
파리스가 궁정식 사랑의 두 번째 특징으로 지적한 바, 기사도라는 중세의 실체와 궁정식 사랑이라는 중세의 허구적인 내러티브는 작품 속에서 여성에게 기사에게 사랑을 속삭이거나 불륜을 저지르거나 기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할 수 있는 등의 일정 수준의 권력을 부여해준다. 랜슬롯이 말하듯, “남정네들이 사랑하는 여인에게 바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사랑과 정중함뿐”이다. 페르스발의 어머니는 아서 왕에게 떠나겠다는 아들에게 “여인네들을 명예롭게 하지 않는 자는 자기 명예도 잃게 되는 법”이라며 기사도 정신을 가르쳐 준다. 특히, 상류층 여성의 무리한 요구를 받드는 기사의 충성은 여성과 남성 사이의 사랑이라는 이성애적 대립항으로 포장되어 일견 이성애라는 낭만적인 구도 속에서 여성이 우위를 지닐 수 있음을 보여주는 표지인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귀네비어가 랜슬롯을 죄수 마차를 아주 잠깐 망설이고 탔다는 이유로 매정하게 대하고 이로 인해 절망한 랜슬롯이 자살을 기도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유일하게 남녀간의 평등함 또는 여성의 우월성이 담보된다고 생각되는 사랑의 문법에서조차 여성의 주체성은 박탈된다. 『그라알 이야기』에서 고뱅이 강가에서 마주치는 기사 기로믈랑은 이성애 관계에서 행사하는 여성혐오적 폭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는 사모하는 여인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그 여인의 애인을 죽인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여인에게 기로믈랑의 구애는 끔찍스러울 뿐이었고 여인은 그에게서 달아나 죽음을 위해 살기에 이른다. 남성은 자신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여성의 의사를 묵살하고 살인까지 저지를 수 있으나, 여성은 그런 남성을 거절하는 것밖에 도리가 없다. 또한 여성이 기사도에 의해 보호받는다는 것은, 기사도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페르스발이 한 여인에게 강제로 키스를 하고 이로 인해 여인이 고난을 겪게 되는 것처럼, 남성이 기사도를 지킬 이유를 상실하자마자 여성이 즉각 위험에 처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심지어 여성은 남성이 충분한 기사도적 예의를 갖추고 자신에게 구애할 경우 이를 거절할 명분조차 마땅치 않다. 기로믈랑은 고뱅의 누이에게 사람과 선물을 보내어 끈질기게 구애하는데, 이런 기로믈랑을 고뱅의 누이는 어찌하지 못하며 오히려 사랑을 받아주어야 한다. 즉 기사도는 물리적이고 사회적인 우위를 가진 남성 전사들의 잠재된 폭력으로부터 여성을 일시적으로 구출하는 최후의 안전망이면서도, 여성을 충분히 보호한다는 착시 아래 효과적으로 여성을 구속하는 남성성의 또다른 도구이다.
기사도는 귀족인 전사엘리트들이 지배계급으로 자리잡으면서 이들의 행동 윤리로서 등장하였다. 폭력과 살인이라는 기사의 기능적 가치와 약자를 보호하고 박애하는 그리스도교적 가치는 상충할 때가 많았다. 언제나 폭력성을 잠재하고 있고 마음만 먹으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기사라는 존재는 뺨을 맞으면 다른 쪽 뺨을 내어주라 하셨으며 인간의 죄업을 짊어진 채 다섯 군데에 상처를 입고 돌아가신 예수의 비폭력이라는 그리스도교의 핵을 위협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기사도는 그 탄생부터 모순을 봉합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으며, 억지로 극과 극을 이어붙여 놓았기에 매우 불안정하고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또다른 불안정하고 취약한 존재인 여성이 이러한 기사도와 조우함으로써 기사도의 모순을 상호충돌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것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었다.
성(castle) 안의 여성은 충분한 자질을 가지고 있지 않은 미완성의 상급자가 지니는 불안정한 본질로 인해 기사에게 고뇌와 갈등을 안겨주며 역설적으로 서사 속에서 기사에게 선택권을 제공한다. 『죄수 마차를 탄 기사』와 『가윈 경과 녹색 기사』의 랜슬롯과 가윈 경은 서로 다른 측면에서 진정한 기사도를 갖춘 인물로 표현된다. 가윈은 아서 왕 앞에 목숨을 걸고 나서면서도 다른 기사들과 왕의 기분을 상하지 않도록 끝까지 겸손하게 행동한다. 성에서는 녹색 기사의 아내의 유혹을 정중하고 유려하게 거절한다. 가윈의 말에 따르면 그에게는 그 어떤 여인도 없으며 그 어떤 여인도 마음에 두고 싶지 않은 상태이다. 반면 랜슬롯은 애모하는 여인 귀네비어의 요구와 명령을 어떻게 해서라도 받들고 사랑의 가치를 높이 삼으로써 기사도를 실천한다. 이러한 차이는 직선 위에서 부딪히는 기사도의 대립항적 가치들이 여성의 존재로 인해 순환적인 것으로 전환되어 기사가 그 순환의 고리 속 어떤 것이라도 선택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중세 기사 로맨스는 ‘주군답지 않은 주군’인 여성 주군의 존재라는 고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그라알 이야기』의 페르스발 그리고 고뱅(가윈)과, 『가윈 경과 녹색 기사』의 가윈, 『죄수 마차를 탄 기사』의 랜슬롯의 군주인 전설적인 아서 왕은 영예롭고 담대하며, 그의 이름에 걸맞게 웅장하고 화려한 궁궐을 가진 왕으로 묘사된다. 반면 왕비 귀네비어는 아름답지만 기사들이 존경할 만한 무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니벨룽겐의 노래』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름다운 헬헤 왕비를 잃은 에첼이 크림힐트에게 구혼하려는 이유는 크림힐트가 아름답기 때문이다. 뤼디거는 에첼에게 “그녀는 저의 소중하신 헬헤 왕비님과 견줄 만”하며, “이 세상에서 그 여인보다 더 아름다우신 분은 없을 것”이기 때문에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는 자는 참으로 행복할 것”이라 보고한다. 반면 군터와 게르노트, 그리고 기젤헤어는 막강하고 탁월한 전사로서 높은 명성을 지니고 있는 인물들로 소개된다. 지크프리트는 뛰어난 무력을 가지고 있는 군주로서 뭇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다. 이렇듯 중세 문학에서 남성 주군은 그야말로 기사들이 마땅히 섬길 만한 자질을 갖추고 있는 상급자이지만, 여성 주군은 그러한 면—기사들이 선망하는 자질—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구조적인 상급자일 뿐이다. 이것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내러티브가 바로 브륀힐트이다. 본디 게르만 신화에서 발키리로 묘사되는 브륀힐트는 작품에서도 강인한 전사이지만 지크프리트에 의해 성적으로 정복당한 후에는 힘을 잃고 남편 군터에게 복종하며, 크림힐트와 각자의 지위가 아닌 각자의 남편을 지위를 가지고 싸운다. 또한 하겐은 크림힐트의 권세를 증명하는 매개이자 크림힐트의 정치력을 확대하는 수단인 막대한 보물을 빼앗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는 자신의 물리적 자질을 증명할 수 없는 반쪽짜리 존재인 여성의 지위가 자신을 소유한 남성의 지위라는 가부장적 질서 또는 이러한 질서 안에서 확보하게 된 물질적 권세에 따라 결정되었음을 예증한다.
폭력과 그리스도교적 윤리를 함께 추구해야 하는 기사도라는 자체모순적인 문법이, 여성에 의해 야기되는 사랑과 군신관계라는 모순되는 두 요소와 맞닿는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다. 아무리 하급자라도 물리적 우위를 가진 남성이 여성에게 복종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묘사되기 위해서는 군신이라는 구도에 사랑이라는 비폭력적 가치가 끼워넣어질 수밖에 없다. 일례로, 주군의 명령을 만족스럽지 못하게 수행하여 주군의 질책을 듣고 절망하는 봉신일 뿐인 랜슬롯과 그의 주군 귀네비어 사이의 관계에 사랑이 덧칠되어 있는 이유는 귀네비어가 여성 주군이므로 사랑의 논리가 있어야만 이 구조가 성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계급차가 없는 관계에서의 이성애는 여성을 억압하고 학대하는 모습으로 쉽게 변모된다. 페르스발에게 키스를 당한 아가씨는 모르는 남자에게 키스를 당했고 겁탈까지도 당했을지 모른다는 이유로 애인에 의해 넝마가 된 옷을 입은 채 고초를 겪는다. 기로믈랑은 한 아가씨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그의 연인을 살해하여 그녀를 취할 수 있지만, 그가 감히 넘볼 수 없는 로슈 드 캉캥에 사는 왕녀인 고뱅의 누이에게는 선물 공세를 펼치면서도 그녀의 사랑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이렇듯 물리적 우위를 가진 남성이 여성에게 사랑을 갈구하거나 충성을 맹세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묘사되기 위해서는 군신의 계급차라는 인위적인 구조가 필요하다. 따라서 불완전하고 어색한 미완의 존재로서의 여성은 중세 문학에서 사랑과 군신관계라는 모순적인 두 요소를 상호보완적이고 순환적으로 작동하도록 만들어 비로소 기사도를 완성시키는 필수적인 구성품인 것이다. 이는 『그라알 이야기』의 페르스발이 고른망 드 고오르의 조카딸에게 대접을 받은 뒤 침대에 누워 잠드는 부분에서 저자 크레티앵 드 트루아가 끼얹는 “없는 것이라고는 여인이 줄 수 있는 향락뿐이지만, 그는 사랑에 대해서도 다른 아무것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하는 터라 아무 근심 없이 곧 잠이 듭니다”라는 첨언에서도 드러난다. 사랑을 모르는 상태인 페르스발은 무예를 갖추었음에도 어딘가 부족한 미완의 기사로 존재하는 것이다. 『니벨룽겐의 노래』의 군터와 지크프리트, 에첼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덕과 무예를 갖춘 뛰어난 군주들이지만, 자신의 성 안에 여성을 앉히기 위해 온갖 모험과 수고로움을 감내한다.
네 작품에서 각각 읽어내었듯이, 중세 기사 로맨스의 본질은 기사도도, 사랑도 아니라, 다름 아닌 여성이다. 과장하여 말하자면 여성이 있음으로써 기사가, 기사도가, 기사 로맨스가 완성된다 보아도 될 것이다. 중세의 기사 로맨스에서 여성은 기사의 성장을 돕고, 기사도가 해결하지 못한 모순을 봉합하는 필수적인 요소로서 기사 로맨스를 비로소 기사 로맨스답게 한다. 여성이라는 미완의 존재는 직선 위에서 충돌하는 그리스도교적 윤리와 기사적 남성성에 사랑과 군신관계라는 화살표를 끼워넣어 순환하도록 만들고, 기사로 하여금 그 순환원 위를 돌며 성장하고 나아가도록 한다. 다만 여기서 여성이라는 존재는 주체나 주인공이 될 수 없으며, 단지 서사가 제대로 굴러가도록 하는 도구로 쓰일 따름이다.
2021년 서*대학교 '동서*전세미나' 기말 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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